IT(정보 통신) 연표 – 1992년

이 해에는 전 세계에서 미켈란젤로 바이러스로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고 합니다. 3월 6일 미켈란젤로의 생일에는 이 바이러스가 활동하는데 하드디스크의 내용을 삭제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금융회사나 증권사들이 많이 긴장을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 당시는 이미 컴퓨터를 활용한 사무처리가 많이 늘던 시대니까요. 3월 6일에 바이러스가 활성화되면 거래에 많은 지장이 생길 것을 예상했던 것 같네요.

이 해에는 전 세계에서 미켈란젤로 바이러스로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고 합니다. 3월 6일 미켈란젤로의 생일에는 이 바이러스가 활동하는데 하드디스크의 내용을 삭제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금융회사나 증권사들이 많이 긴장을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 당시는 이미 컴퓨터를 활용한 사무처리가 많이 늘던 시대니까요. 3월 6일에 바이러스가 활성화되면 거래에 많은 지장이 생길 것을 예상했던 것 같네요.

실제로 1992년에 이런 눈부신 발전을 낳까지 삼성은 10년간 밑 빠진 독에 물을 쏟게 투자를 계속하고 왔다고 합니다.그러나 결국 10년의 와신상담 끝에 이제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최고의 톱에 서게 되는 상황을 맞게 됐군요.그 뒤에는 일본과 미국의 거대 대부분 반도체 회사와 치킨 게임이라는 어려운 전쟁을 거치면서도 살아남은 최고의 위치에 붙게 됩니다.한국의 IT분야에서 자랑스럽게 해외에 낼 수 있는 최고의 국제적인 명품이 바로 메모리 반도체 제품입니다.그 신화의 시작이 이해에서 성립되게 됩니다.한국 최초의 인공 위성, 한국에서 발사된 최초의 인공 위성이 지구의 점괘도에 들어갑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최초의 인공 위성은 영국의 회사의 기술을 빌려서 위성 본체를 제작하게 되었대요.어쨌든 1992년 8월 11일에 기아나 우주 센터에서 아리안 4로켓에 실려서 발사됬대요.우리별 1호는 무게가 불과 48.5kg정도였대.작은 몸이라 할 것도 많지 않았습니다.그래도 한국에서는 우주로의 첫걸음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과거, 과천 과학관에서 과학 기술 1호 위성으로 명명된 모형을 사진에 담아 온 것입니다.어쨌든, 우리별 1호는 지구 표면 촬영, 음성 자료와 화상 정보를 교신하는 실험용으로 제작되었습니다.그 뒤 더 발전된 위성이 나오기 이전에 선구자적인 의미에서 발사된 그런 위성이라고 할 수 있겠죠.발사 당시의 공식 수명은 5년 정도로 예측되었으나, 1997년 임무 종료 후에도 더 7년간 작동하고 2004년경에 교신이 완전히 단절했다고 합니다.PC통신 프로그램의 이야기, 이전 PC통신이 한창 유행한 시절에는 가장 많이 사용된 통신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90년대 초에는 모뎀에서 전화망을 통해서 포스 데이타 포스 서브(POS-Service)나 하이 텔(Hitel)PC통신 서비스에 접속할 때 주로 사용됐던 프로그램입니다.경북대 하늘소라는 써클에서 제작한 말씀이란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지금은 그 당시의 프로그램 화면을 찾기도 어려운데요?

그래서 부끄러운 일에 하늘소의 그림 대신해서 드립니다.아무튼 이 프로그램은 PC통신 대화방 BBS(전자 게시판, Bulletin Board System)에 글을 올리거나 첨부된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요즘은 컴퓨터나 휴대 전화로 1:1챠쯔토 서비스가 일반적이지만.옛날에는 메시지도 편지처럼 시간 간격으로 오가며 그런 시대였습니다.대신 BBS에서 서로 대화를 하게 글을 교환할 수 있었던 거네요.이 프로그램은 DOS에서 작동했습니다.이 나이에 발표된 Windows 3.1이 보편적으로 확산되고요.Windows에 그래픽 기반으로 만들어진 세롬데ー타망라는 프로그램에 밀려서 사라졌대요.그래도 이전 컴퓨터 통신을 하신 분은 여러분 이 프로그램을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PC에뮬레이터 하늘소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하는 통신 프로그램이 소개되서 말입니다.사실 이 프로그램은 서버와 데이터를 교환하는 데 사용되는 일종의 에뮬레이터(Emulator)프로그램이었습니다.예전에는 서버가 전용 터미널다는 단말을 사용했던 것.PC에서 대신 그런 특별한 단말기를 흉내내면(Emulation) 하고 에뮬레이터는 이름이 붙은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이는 이전의 에뮬레이터 프로그램에서 사용된 화면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므로, 플리커(Flicker)에서 가져온 사진입니다.사실 개인적으로는 1992년에 이 PC에뮬레이터 프로그래밍을 회사에서 하고 있었습니다.예전에는 메인 프레임이나 유닉스 서버 등 많은 중대형 컴퓨터가 있고요.화콤(FACOM), 프라임(PRIME)와 유닉스(UNIX)서버를 위한 에뮬레이터 프로그램을 잘 사용했습니다.서버 하드웨어 회사는 특유의 명령어 세트를 가진 전용 단말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컴퓨터가 널리 대중에 보급되면 전용 단말기 사업이 욕먹게 됩니다.업체마다 고유의 형태로 하드웨어 종속적인 단말을 팔고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 저항에 부닥치게 되었습니다.그래서 프로그램으로 동작하는 에뮬레이터도 많이 만들어지는데요.그래서 컴퓨터를 만들던 회사에서는 이러한 통신 프로그램이 한때 중요한 소득원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은 지금도 주위에 볼 수 있지만.최근에는 Telnet과 SSH를 지원하는 통신 프로그램을 에뮬레이터의 부류에 속하는 소프트웨어로서 볼 수 있습니다.아무튼 서버 업체들은 각각의 표준에서 제품을 만든 세상이었습니다.그래서 에뮬레이터를 하던 친구는 일종의 시험 같은 대결 상황에 자주 만났습니다.특정 서버 응용 화면을 잘 에뮬레이션(화면이 깨지지 않고 잘 보이도록 하는 일) 하면 그 회사의 컴퓨터를 사서 주었기 때문입니다.컴퓨터 하드웨어를 팔려면 반드시 에뮬레이터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판매하는 식이었습니다.그래서 대형 단말기의 납품하는 사업이 발주되는 경우에는 에뮬레이터 프로그래머가 며칠 밤을 새는 것이 자주 있었습니다데이터 분석기(Data Analyzer)등으로 출력되는 화면 제어 데이터를 수신하고, 화면이 잘 작동하도록 프로그램을 수정하기 때문입니다.실제 시스템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진검 승부나 다름없지 않았습니다.보통, 납품하는 사업의 2~3일 전에 에뮬레이터 작동 테스트를 했는데, 그러자 꼼짝도 못하고 잡히고 프로그래밍을 해야 할 처지가 되곤 했어요.개인적으로는 그 일이 너무 어려워서 두손 두발을 함께 가진 상황이 되었습니다만.아무튼 하늘소의 이야기 프로그램을 보면 1992년 당시의 고난을 추억하네요.이는 그래픽이 아니라 텍스트 화면이 과거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의 얘기였습니다.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가끔 개인적으로 블로그에 산딸기 파이에 관한 글을 올리면서 Python프로그램 코드를 소개하기도 합니다.그동안 컴퓨터 직종에 종사하며 프로그래밍을 하고 본 경험은 1992년 전후해서 약 3년 정도밖에 모르는 거군요.

그 당시에는 DOS가 최상의 운영체제였고, 사람들은 텍스트로 마음을 전하던 세상이었습니다. 지금처럼 화상을 보내거나 실시간으로 음성과 메시지 통화를 하는 시대는 아니었는데요. 하지만 위 사진처럼 텍스트로만 정보를 보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PC통신 서버를 통해 마음을 나누곤 했나 봅니다. 하지만 그런 텍스트의 세계도 윈도우 3.1이 등장하면서 큰 변혁을 겪었습니다. 1992년 IT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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